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위대(나치 독일) (문단 편집) == 창설 및 확장 == 원래는 [[아돌프 히틀러]] [[개인]]의 신변 [[경호]] 및 [[총통]] [[관저]] [[경비]]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개 경비 [[조직]]이었다. 원래 SS는 돌격대([[SA]])의 하부조직으로 290명이라는 소규모였으며 계급 체계도 돌격대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. 그러다가 [[하인리히 힘러]]가 SS를 맡으면서 별개의 [[집단]]처럼 운용되기 시작하였다. 집권 후 히틀러는 집권에 큰 공을 세운 [[돌격대(나치 독일)|돌격대]]를 쓸모 없어진 [[사냥개]] 취급하여 [[토사구팽]]해버린다. 그 이유는 돌격대 참모장 [[에른스트 룀]]이 공공연히 '내가 없었으면 히틀러도 없었다'라며 떠들고다닌 데다가, 규모가 너무 비대하여 한창 때는 300만명이 넘었다. 그래서 히틀러에게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. 여기에 SA는 제2의 [[혁명]]을 일으켜 [[귀족]]-[[자본가]]의 [[재산]]을 몰수하기를 원하는 반[[자본주의]]성향을 지니고 있었고, 이 때문에 히틀러를 지지한 보수층은 히틀러가 SA를 빨리 해체할 것을 원했다. 게다가 룀은 [[프로이센]] 귀족 출신들이 좌지우지하는 [[독일 국방군]]을 SA에 흡수시켜 [[국민]] 전체가 참여하는 국민의 군대라는 의미에서의 '[[인민군]]'을 창설하려고 했다. 그 전의 군대는 군의 고위층이 너무 구 프로이센 귀족층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, 경우에 따라서 군의 [[쿠데타]] 위협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. 그러나 이는 독일군 지도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. 프로이센의 귀족들로 구성된 국방군 참모부는 [[바이에른]] 촌뜨기 위관 출신인데다 [[동성애자]] 사회주의자인 룀이 [[국방장관]]이 되는 것도, 돌격대 지도부가 자신들과 동급이 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. [[힌덴부르크]] 대통령과 [[베르너 폰 블롬베르크]] 육군 원수는 돌격대에 대한 "적절한 조치"가 없다면 정부를 비토하겠다고 경고하였다. 다른 사람은 몰라도 [[대통령]]인 힌덴부르크는 [[동부전선]]의 [[영웅]]으로 軍 내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. 유대인들에 대한 [[차별]]을 이미 시행하였지만, 힌덴부르크의 반발에 완화시켜 줄 정도였다. 당장에 죽기 직전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황에서도 히틀러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였으며, 히틀러도 힌덴부르크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를 대놓고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. 한편 군이 정부 위에 존재하던 독일의 특성상 나치의 [[군사력]]을 담당하던 룀의 추종세력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. 돌격대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히틀러가 룀의 [[꼭두각시]]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역으로 제거될 가능성이 존재하였다. 히틀러는 있을지도 모르는 SA의 [[반란]]을 미연에 방지하고, 보수층과 군부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SA를 버리기로 결심했다. 결국 히틀러는 룀을 죽이기로 결정하고, 힘러와 하이드리히에게 [[제1차 세계대전]] 당시 육군 [[전차]] 승무원 출신이자 폭력배였던 [[요제프 디트리히]]에게 SS를 이끌고 가서 해치울 것을 명령한다. [[장검의 밤]] 사건으로 룀과 그를 따르는 세력이 전멸하면서 SA는 급속히 세력이 줄어들기 시작하고(그 뒤에도 일개 경호 및 의장 등을 위한 [[조직]]으로 존재는 했지만), 대신 SS의 세력이 급격히 커져 [[1933년]]부터는 정식으로 정부 조직으로 들어가 경찰권까지 접수하게 되었다. 이후부터 종전시까지 모든 독일의 [[경찰공무원]]들은 자신의 [[경찰]] 계급과 동급의 SS [[계급]]을 함께 부여받았다. 다만 이들은 사실상 SS가 아닌데다 강제로 입대한 SS 대원은 개별 전범 행위가 없으면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후에도 [[전범]] 처리는 되지 않았다. 한편으로 SS 장관 [[하인리히 힘러]]는 히틀러에게 모든 [[충성]]을 다하며 [[우상숭배]]를 하듯 받들어 모셨고, 게다가 나치당 초기에는 사무에 능력 있던 인텔리였기에, 히틀러의 총애를 얻어 [[2인자]] [[헤르만 괴링]]의 뒤를 이어 독일의 사실상 3인자로 군림했다. [[고대]] 게르만 [[전설]]이나 [[판타지]] 등에 [[관심]]이 많던 힘러는 인종학적으로 우월한 독일 [[민족]]을 주장하고 체계화시켜 SS 대원은 3대에 걸친 신상 증명서와 [[외모]]가 우수해야 했으며, 온갖 [[게르만]] 의식과 고대문자 등을 심벌처럼 사용케 했다. 특히 SS의 본거지인 베벨스부르크 성 곳곳에 새겨진 [[슈바르체존네]]가 대표적이다. 심지어는 구 [[부르고뉴 공국]]의 강역을 SS가 직접 통치하는 자치국 [[부르군트 SS국]]으로 차지하려는 시도까지 했었다. [[펠릭스 슈타이너]] [[장군]]이 친위대 초기에 아름다운 저능아들이라고 비꼬았다는 말은 실제로 없는 일이라고 한다. 집권 후 [[군부]]를 숙청한 [[스탈린]], 집권 후 SA를 [[숙청]]한 히틀러의 차이가 보이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